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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소방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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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역사

아름다운 역사와 문화를 훌륭히 보존하고 복잡 다양해지는 현대사회의 새로운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300만 도민에게 감동을 주는 소방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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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조직 내 소방기구

중앙 소방행정기구

1910년 6월에 설치한 경무총감부에서는 소방업무를 보안과내 소방계에서 분장하였다.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관제의 개혁이 이루어 졌는데 외청격이었던 겸무총감부가 총감부 내국인 경무국으로 개편되었고 소방업무는 경무국내 보안과에서 관장토록 하였다. 1939년 중.일 전쟁이 격화됨에 따라 방공(防空)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경무국에 방호과를 설치하고 소방사무를 분장토록 하였다. 1943년 11월 관제의 대 개편에 따라 방호과를 경비과로 변경하였으며 이 경비과에서 소방사무를 관장하였다.

지방 소방행정기구
도 경무부

중앙의 경무총감부 산하로 도에는 경무부를 두었는데 경무과 고등경찰과 보안과 및 위생과 등 4개과가 있었으며 소방사무는 보안과에서 분장하였다. 1939년에는 중앙기구의 개편으로 방호과를 설치함에 따라 도경무부에는 방호과를 두고 소방사무를 이 방호과에서 담당하였다.

경찰서와 헌병부대

지방에는 경찰서와 헌병부대를 설치하였는데 여기에서 소방조를 지휘 감독하여 소방업무를 수행하였으며 1919년 이후에는 헌병부대가 폐지되고 174개 경찰서로 운영되었다.

소방조

이제까지 일본인이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보호를 위하여 설치, 운영해오던 소방조를 1915년 6월 23일 소방조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법규인 소방조규칙을 조선총독부령(제65호)으로 제정 시행함에 따라 전국으로 확대되었는데, 1915년 12월 평안남도 경무부에서 소방조직규칙시행세칙을 제정하기 시작하여 황해도가 1931년에 마지막으로 제정함으로써 전국적으로 조직되었다. 1938년 당시 소방조는 1,393개조에 69,414명 이었으며 이 소방조는 1939년 7월 경방단에 흡수 되었다.

소방협회설립

1928년 12월 2일 재단법인으로 조선 소방협회가 설립되었는데 본부는 조선 총독부 총무국에 연합지부는 각 도 경무부에 지부는 경찰서 또는 소방서에 두도록 했다. 1939년 경방단이 설치된 후에는"조선방공협회"로 이어졌다.

경방단

1939년 7월3일 조선총독부령 제 104호로 경방단규칙이 제정 공포됨에 따라서 소방조와 수방단을 해체하고 경방단으로 통합하였다. 그리하여 구한말 이래 조직되어있던 소방조는 제도상으론 모습을 감추고 새로운 경방단 조직으로 소방활동을 하게 되었다.

상시소방제도의 설립

일제 통치하의 소방기본조직은 소방조 조직이다. 그러나 소방수요가 늘어나고 화재발생이 증가함에 따라 상비 소방요원이 배치되고 소방관서가 설치되게 되었다.

상비소방제도

상비소방수제도는 소방조 소속 상비소방수와 경무부 소속 상비소방수로 이원화되어 있었다

소방조 소속 상비소방수
  • 당시 일제총독부의 자료가 없어 정확한 시행 연도는 알 수 없으나 1900년대 무렵부터 소방조 상비소방수가 임명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들의 숫자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우나 1918년 말 현재 조선 총독부 통계에 의하면 150여명 수준이었다.
도 경무부 소속 상비소방수
  • 문호의 개방으로 외래문물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소방제도가 들어왔는데 이때부터 소방장비를 갖추고 훈련을 실시하게 되었으며 수도의 개설로 소화전이 설치되고, 화제보험제도가 실시되었다.
    도 경무부 소속 상비소방수 제도가 생겨난 것은 한일 합방 직후인 것으로 여겨지는데 1922년 당시 이들의 신분을 판임관(당시 순사의 직급, 현재의8∼9급 공무원에 해당) 대우로 하면서 정식 공무원으로 양성화하였다. 일제시대에 도입된 소방수제도는 일본제도를 모방 시행한 것이지만 우리 나라에서 처음 실시된 소방직공무원이라는 점에서 그 뜻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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